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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날씨도 맑고 좋아서
지난 번 동태투어를 갔던 광화문역으로 다시 출동했습니다.
이번에 답사할 곳으로
고종즉위40주년칭경기념비 -> 일민미술관 (구 동아일보 & 동아방송 사옥) ->
구 조선중앙일보 사옥 (현 농협 종로지점)-> 우정총국 (체신기념관)
-> 정독도서관 & 서울 교육사료관 (구 경기고등학교)
이렇게 다녀왔답니다~
빨간 점이 있는 위치...일려나
8번출구에서 나와서 광장으로~
장군님이 보고 있어~
답사하러(라기보단 다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모드였던) 갔던 날은 정말
카메라에 담다가 메모리카드가 체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제 기분도 날아갈듯이 좋았더래요~ 우히힛힝!
카메라에 담다가 메모리카드가 체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제 기분도 날아갈듯이 좋았더래요~ 우히힛힝!
자 그럼 광화문역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볼 수 있는 기념비 쪽으로 먼저 가보도록 하죠.
고종(재위 1863∼1907)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에 기로소에 들어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를 보호하는 비전(碑殿)안에 있다. 또한 이 비석에는 고종이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기로소(耆老所)는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이다. 조선 태조가 60세 되던 해에 친히 기영회에 들어갔는데, 이후 왕들이 오래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자, 숙종과 영조 등이 6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미리 앞당겨 들어간 것을 본받아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세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전은 20세기초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틀이 해체되기 직전에 세워진 건물로
당시 이러한 유형의 건물 중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며, 이 시기에 세워진 덕수궁의 다른 여러 건물과 함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된다.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를 보호하는 비전(碑殿)안에 있다. 또한 이 비석에는 고종이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기로소(耆老所)는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로, 고려 때의 기영회를 계승한 관제이다. 조선 태조가 60세 되던 해에 친히 기영회에 들어갔는데, 이후 왕들이 오래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자, 숙종과 영조 등이 6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미리 앞당겨 들어간 것을 본받아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세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문은 윤용선이 짓고 민병석이 썼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전은 20세기초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틀이 해체되기 직전에 세워진 건물로
당시 이러한 유형의 건물 중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며, 이 시기에 세워진 덕수궁의 다른 여러 건물과 함께
중요한 연구자료가 된다.
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광화문 역에서 나와서 이순신 장군 동상쪽으로 나오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설명처럼 고종이 나이가 51세가 되어서까지 집권을 한 것에 대한 기념으로 세운 비인데,
51세까지 산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하냐고 느끼겠지만 사실 왕의
(참고:세종대왕의 하루, 아 물론 세종대왕님이야 극단적인 거라고 하지만 다른 왕들도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정말 오래 산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 당시 나라의 기운은 이미... 아아 ㅠ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만세문도 일제강점기 시절 일반인의 정원에 있었던 것을 광복 때에 다시 찾아와 세웠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일부손실된 것을 다시 복원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이 각이 고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원래 '명성황후를 위해 지어진 사당'이라는 설도 나와 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사당을 세웠으나 일제의 압박에 못이겨... 아 눈에서 습기가... 관련 기사
문에는 만세문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나라는...
그리고 저 기념비를 지키고 있는 건물을 기념비'전'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그냥 이렇게 비를 보호하는 건물들을 보통 각을 붙이는데(저도 각인줄 알았어요...)
'각'과 '전'은 글자도 다르고 그 격도 다르다고 합니다.
비 자체가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고종황제를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건물 역시 가장 높은 격인 '전'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그러니깐 보신각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건물... ㄷㄷㄷ)
참고글 : 김영택의 테마기행 - 21. 기념비전 中
다음 글에서 계소~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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